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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C는 요구사항을 말해 주지 않는다

직장인 밴드를 하면서 만든 사이드 프로젝트 회고록입니다.

ChangBeen Seo조회수

시리즈 밴드 투표앱 플리픽 · 1편

직장인 밴드 일코해제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습니다. 공연을 준비할 때면 멤버마다 하고 싶은 곡을 올리고 투표로 정합니다. 이 과정이 늘 불편해서, 2026년 3월 말부터 곡 투표 앱 플리픽을 만들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이고, 밴드 멤버들의 의견을 받아 혼자 만듭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대신 사람들이 이 앱을 쓰고 싶어 할지를 훨씬 오래 고민했습니다.

듣고 투표하기가 번거로웠습니다

처음에는 카톡 투표를 썼습니다. 투표 항목에는 곡 제목만 있어서, 곡을 들어 본 뒤 다시 투표 화면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게 너무 번거로웠습니다.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로도 해 봤습니다. 듣기는 편합니다. 하지만 유튜브 뮤직을 구독하지 않는 멤버에게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듣기와 투표를 한 화면에 붙였습니다. 곡에 유튜브 링크를 붙이면 멤버들이 그 자리에서 미리 듣고 찬반을 누릅니다. README에는 문제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카톡 단톡방에서 '다음 주에 정하기로' 끝나던 곡 결정을, 5분 만에 끝내는 밴드 투표 도구

무엇을 먼저 만들까

신경 쓴 순서가 있습니다.

  1. 투표와 음원 듣기
  2. 모바일 접근성
  3. 셋리스트
  4. 카톡 공유
  5. 댓글

투표와 음원 듣기는 앞에서 말한 불편함 그 자체라 맨 앞에 뒀습니다. 투표 링크는 단톡방에서 돌고, 멤버들은 휴대폰으로 그 링크를 누릅니다. 그래서 화면도 처음부터 모바일을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곡이 정해지면 그다음은 순서입니다. 공연은 곡 목록이 아니라 순서이고, 곡 사이에 쉬는 시간이 들어가고, 전체 길이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셋리스트에 곡, 인터벌, 자작곡을 블록으로 놓고 순서를 바꾸면서 총 시간을 보게 했습니다.

플리픽 후보곡 화면과 셋리스트 화면

카톡 공유는 새 사람이 들어오는 입구입니다. 저장소 문서에도 "카톡 공유가 코어 바이럴 루프"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투표가 열리면 누군가 단톡방에 공유하고, 다른 멤버는 그 링크로 들어옵니다. 공유 카드는 다섯 종류를 만들었고, 곡마다 의견을 남기는 댓글은 그다음에 붙였습니다.

숫자를 열어 봤습니다

9월 21일, 반년 동안 쌓인 운영 데이터를 읽기 전용으로 조회해 봤습니다.

항목수
플레이리스트39
곡133
투표279
셋리스트 항목54 (곡 38, 인터벌 16)
댓글16
활동한 계정15
플레이리스트를 만든 계정7

작은 숫자지만, 들여다보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홍보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밴드 말고 외부 밴드 네 팀이 써 봤고, 그중 한 팀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팀이었습니다. 3일 동안 곡 34개를 올렸고, 다섯 명이 투표를 67번 했고, 셋리스트 항목도 13개 만들었습니다. 우리 밴드보다 크게 썼습니다.

나머지 세 팀은 멈춘 지점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팀은 곡 8개를 7분 만에 올렸습니다. 그다음 셋리스트 탭에서 인터벌 블록만 3개 넣었고, 곡은 하나도 넣지 못했습니다. 이틀 뒤 다시 와서 또 인터벌만 눌렀습니다. 확인해 보니 "셋리스트에 추가"가 점 세 개 메뉴 안에 숨어 있었습니다. 투표 목록에서 바로 보이게 고쳤습니다.

다른 한 팀은 6월에 곡 2개, 두 달 뒤인 8월에 곡 6개를 올렸습니다. 투표도 셋리스트도 0이라 기록만 보면 떠난 팀 같았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두 계정이 곡을 올린 기록이 있었습니다. 투표가 아니라 곡 보관함으로 쓰고 있었던 겁니다.

마지막 한 팀은 곡 하나를 올리고 더 쓰지 않았습니다. 네 팀을 놓고 보면, 외부 팀을 실제로 움직인 기능은 투표 하나였습니다.

멤버들의 혼잣말

운영 데이터뿐 아니라 우리 밴드 멤버들이 앱을 쓰는 모습에서도 같은 문제가 보였습니다. 멤버 중에도 UI가 깔끔하고 명료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앱을 쓰면서 나온 말은 이랬습니다.

셋리 곡의 순서를 드래그앤드롭이 되나? 아 편집 버튼이 여기 있구나.. 아 카드가 펼쳐지네? 아 이건 안 되네 저건 되네

제가 봐도 UI/UX가 너무 별로였습니다. 한 번만 쓰고 떠난 사용자들도 앱이 매력적이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능을 더 다듬기보다 UI/UX를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중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모임도 사라졌습니다

데이터에서 더 아픈 것도 보였습니다. 플레이리스트마다 활동한 날이 대부분 하루였고, 길어야 7일이었습니다. 다시 오는 구조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공연 하나가 플레이리스트 하나였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그 플레이리스트에 모였던 사람들도 흩어지고, 다음 공연에는 같은 사람들을 처음부터 다시 불러야 합니다. 플레이리스트 39개는 멤버를 39번 다시 모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밴드가 계속 쓴 건 멤버들이 다음 플레이리스트로 같이 옮겨 왔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붙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로그인 없이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링크를 누르면 바로 투표하는 쪽이 가장 가볍습니다. 그런데 리텐션을 생각하니 달랐습니다.

그래서 로그인을 두고, 밴드라는 단위를 만들고, 한 밴드 안에 공연 플레이리스트가 여러 개 속하게 했습니다. 로그인은 카카오 로그인 한 번이면 되게 했습니다. 이 셋은 기능이라기보다 최소한의 소속감을 주는 장치입니다. 우리 밴드의 공간이 있고, 공연이 끝나도 다음 공연 플레이리스트가 같은 자리에 생깁니다.

무거웠던 것들

처음에는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습니다. 공지사항, 한 사람이 여러 표를 쓰는 복수 투표, 합주할 때 쓰는 메트로놈 같은 것들입니다.

돌아보면 대부분 부수적인 기능이었습니다. 공지사항과 복수 투표, 메트로놈은 듣고 투표하는 데 꼭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로그인과 밴드는 다음 공연에도 같은 멤버가 돌아올 공간을 만들려고 넣은 것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능을 미룰 때 다시 꺼낼 조건을 같이 적습니다. 미룬 일을 모아 둔 문서의 첫 줄은 이렇습니다.

미룬 작업. 항목마다 이유와 재개 조건이 있다. 조건이 없는 보류는 망각이다.

예를 들어 지난 공연에서 셋리스트에 못 들어간 후보곡을 다음 공연으로 넘겨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밴드가 정말로 두 번째 공연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지 먼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 밴드가 두 팀 이상 생기면 다시 꺼냅니다.

새 플레이리스트가 생기면 멤버에게 알려 주는 기능도 미뤘습니다. 카카오 알림톡은 심사와 건당 비용이 들고, 이메일은 수신 동의가 필요하고, 웹 푸시는 iOS에서 홈 화면에 추가해야 합니다. 어느 길로 갈지는 따로 정해야 하는 문제라, 그동안은 카톡 공유 카드로 버팁니다.

B2B와 B2C는 달랐습니다

회사에서는 B2B SaaS의 백엔드를 맡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요구사항이 명확했습니다.

플리픽은 달랐습니다. 사용자는 무엇이 불편한지 말해 주지 않았고, 어디서 멈췄는지는 운영 기록을 열어 봐야 알 수 있었습니다. 떠난 줄 알았던 팀이 사실은 다르게 쓰고 있었던 것처럼, 그 기록을 읽는 것도 틀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짜 필요한 기능 하나부터 다듬기로 했습니다. 플리픽에서는 듣고 투표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이 사용자가 다시 올 이유입니다.

지금 하는 일

UI/UX를 빠르게 고친 뒤, 합주실에 홍보물을 붙일 계획입니다. 지금까지는 홍보를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첫 홍보입니다. 고친 화면과 홍보 뒤의 숫자는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

플리픽을 plypick.kr에서 사용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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